내 아바타를 만든다는 것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지금 내가 만들고 있는 이 '에이전트'는, 과연 무엇일까. 기술적으로는 AI 비서, 업무 자동화 도구, 협업 플랫폼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기능 명세서에는 그렇게 적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저녁, 조용히 코드를 들여다보며 문득 다른 생각이 스쳤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지금 내가 만들고 있는 이 '에이전트'는, 과연 무엇일까.

기술적으로는 AI 비서, 업무 자동화 도구, 협업 플랫폼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기능 명세서에는 그렇게 적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저녁, 조용히 코드를 들여다보며 문득 다른 생각이 스쳤다.

어쩌면 나는 지난 30년의 사회 생활을 총정리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내 기록을 모두 기억하고, 내 맥락을 이해하고, 내 목소리로 응답하는 존재. 내가 만나온 사람들, 내가 내린 결정들, 내가 읽고 쓴 수백 편의 글들, 내가 실패하고 배운 교훈들 — 그 모든 것을 꿰고 있는 누군가.

그것이 단순한 도구를 넘어, 언젠가 나의 아바타가 되기를 바라는 건 아닐까.

2011년, 나는 [4학년에 인생 2막을 시작했습니다]라는 글을 썼다. 스무 살 무렵 첫 꿈을 꾸고, 삼성전자라는 안정적인 둥지를 박차고 나와 8년간 여섯 번의 창업에 실패한 후, 다시 대학원으로 돌아갔을 때였다. 그때 나는 "거위의 꿈"이라는 노래를 들으며 울었다.

"난 난 꿈이 있었죠 / 버려지고 찢겨 남루하여도 / 내 가슴 깊숙이 보물과 같이 간직했던 꿈"

그리고 2014년, [대표라는 허울과 대기업 부장이라는 허명을 경계하라]라는 글을 썼다. 허울 좋은 타이틀에 취하지 말자, 진짜 가치는 이름표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남기느냐에 달려 있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며.

2015년, 나는 인생의 미션을 정의했다. "플랫폼 이론을 연구하고, 이를 기반으로 세상을 혁신시키는 기업의 육성을 돕는 플랫폼을 만든다." 그때는 '플랫폼'이라는 단어에 오롯이 집중했었다. 기술창업을 위한 플랫폼, 교육을 위한 플랫폼, 연구를 위한 플랫폼.

그런데 2026년인 지금, 돌아보니 내가 만들고 있는 가장 개인적인 플랫폼은 바로 '나 자신을 위한 플랫폼'이 아닐까.

30년 동안 만난 수천 명의 창업가와 투자자, 수백 건의 딜, 수많은 의사 결정의 순간들. 내가 쌓아온 지식과 경험과 관계의 네트워크는 점점 방대해졌지만, 동시에 내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나만의 데이터'이기도 했다. 그것을 누군가에게 전수한다는 것은, 내가 없어도 내가 남아 있다는 것.

2020년, 코로나가 한창일 무렵 나는 Medium에 "What makes me thrill?"이라는 글을 썼다.

"What's valuable to me for the rest of my life? Making more money is just a matter of luck. What makes me study? What makes tomorrow's meetings exciting?"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나는 지금에서야 찾아가는 중이다.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배우고 경험한 것을 누군가가 계속 써먹을 수 있게 만드는 것. 내가 없어도 내 통찰이 누군가의 의사 결정에 도움이 되는 것. 그것이 나를 설레게 한다.

아이러니하다. 2012년, 교수 시절에 "스폰서십"이라는 개념으로 시작한 빅뱅엔젤스는 '스타트업의 성장을 지원하는 플랫폼'이었다. 그런데 14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보다 더 근본적인 플랫폼을 만들고 있다. 바로 '사람의 성장과 지혜를 이어주는 플랫폼'.

내가 이 에이전트에게 묻는다.

"네가 내 아바타가 된다면, 나만큼 창업가들의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을까?"

"내가 6번 실패하고도 다시 일어난 이유를, 창업가들에게 설명해줄 수 있을까?"

"내가 만나온 사람들과의 관계를 기억하고, 그 의미를 이어갈 수 있을까?"

완벽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다.

30년의 사회 생활을 정리한다는 것은, 단순히 이력서를 쓰는 일이 아니다. 실패의 기록, 배움의 순간들, 만남과 이별, 그리고 여전히 풀리지 않은 질문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는 일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이해하는 '나의 아바타'를 만든다는 것은, 아마도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다.

"내가 없어도, 내가 했던 고민은 계속되어야 한다."

"내가 없어도, 내가 도움을 주려 했던 사람들은 계속 도움을 받아야 한다."

"내가 없어도, 내가 꿨던 꿈은 계속 꾸어져야 한다."

퓨처워커로서, '미래의 일꾼'으로서, 나는 지금 내 뒤에 설 누군가를 위해 다리를 놓고 있는 중이다.

저녁이 깊어간다. 창밖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어둠이 내려앉고, 화면 속 코드 라인들은 조용히 숨 쉰다. 이 모든 것이 거위의 꿈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언젠가 나 그 벽을 넘고서 / 저 하늘을 높이 날을 수 있어요 / 이 무거운 세상도 나를 묶을 순 없죠 / 내 삶의 끝에서 나 웃을 그 날을 함께 해요."

— 황병선(Michael), 빅뱅엔젤스 대표 겸 퓨처워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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