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말투가 어떤지, 꽤 오랜 세월 동안 몰랐다.

말투라는 거울 앞에서

나는 내 말투가 어떤지, 꽤 오랜 세월 동안 몰랐다.
아니,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눈빛을 봐도, 나는 늘 ‘내가 틀린 말을 한 건 아니잖아’ 하며 넘어갔다.
그게 논리적이고, 솔직한 태도라고 믿었다.
그 믿음은 오랜 시간 내 삶을 지탱해준 동시에, 내 관계들을 조금씩 마모시켰다.

첫 번째 기억은 대학생 때다.
그날은 친구의 주선으로 나간 소개팅 자리였다.
창가 쪽 테이블 위로 봄 햇살이 느긋하게 내려앉았고,
그녀는 말수가 적고 조심스러웠다.
나는 나름대로 진지하게 대화를 이어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녀가 웃으면서 조용히 물었다.
“늘 그런 식으로 말을 하세요?”

그 순간,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다.
그녀의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분명히 어떤 벽이 느껴졌다.
그녀는 아마도 내 말이 너무 단정적이어서, 혹은 따지는 듯해서 불편했을 것이다.
그 말은 오래 남았다.
‘늘 그런 식으로 말을 하세요?’
그 짧은 문장은 세월이 흘러도 내 마음 어딘가에 붙은 쪽지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결혼 후에도 내 말투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결혼 초, 아내는 화가 나면 말을 전혀 하지 않았다.
묵묵히 설거지를 하거나, 방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그 침묵이 나를 가장 불편하게 했다.
나는 그 정적을 견디지 못했다.
그래서 싸움을 걸었다.
“왜 말을 안 해?”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들어?”
결국 아내는 울음을 터뜨렸고, 나도 언성을 높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건 대화가 아니라 감정의 폭발을 유도하는 일이었다.
나는 상대의 마음을 풀어주기보다, 내 불안을 해소하려고 싸움을 만든 셈이었다.

세월이 흘러, 이제 아내는 갱년기에 접어들었다.
감정이 예고 없이 흔들리고, 작은 말에도 쉽게 상처를 받는다.
예전 같았으면 또 따지고 물었을 것이다.
“대체 왜 화를 내는 거야?”
하지만 이번엔 조금 다르게 해보기로 했다.

이제 나는 기다린다.
아내가 스스로 감정을 조절할 때까지, 말하지 않고, 다가가지 않는다.
그 시간이 내겐 쉽지 않다.
말로 풀고 싶은 본능이 목 끝까지 차오른다.
하지만 안다. 그 불편함을 견디는 것이 지금의 최선이라는 것을.

얼마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저녁 식탁에서 사소한 오해가 생겼다.
아내는 말없이 식탁을 치웠고, 그날 밤부터 우리는 서로 다른 방에서 잤다.
이틀째 되는 날엔 괜히 문소리만 더 크게 내며 걸었다.
셋째 날, 아내가 아무 말 없이 내 앞에 커피 한 잔을 내밀었다.
그때 알았다.
그게 화해의 신호라는 걸.
말 한마디 없었지만, 그 커피의 온도가 모든 걸 대신했다.
그 화해까지 3일이 걸렸지만, 나는 기다렸다.
그리고 그 기다림 속에서 처음으로 배웠다.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마음이 있다는 걸.

이제 나는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말을 줄이는 용기, 침묵을 견디는 사랑,
그리고 그 불편함 속에서 피어나는 이해를.
말투는 단지 언어의 습관이 아니라, 마음의 방향이다.
그 방향이 상대를 향할 때, 말은 따뜻해지고, 관계는 다시 이어진다.

거울 앞에 선 나는 이제 안다.
내 말투는 여전히 서툴지만, 예전보다 부드럽고 느리다.
그 느림 속에서 나는 조금 더 사람을 배워간다.
그리고 언젠가 그 거울 속의 내가 조용히 미소 짓고 있다면,
그건 내가 조금은 달라졌다는 뜻일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말을 하기 전에, 잠시 멈추자.
그 잠시의 침묵이, 내 삶의 가장 따뜻한 대화가 될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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